好學의 神學/[世界信仰人]

중국 선교의 선구자 '허드슨 테일러' 1

好學 2009. 10. 7. 17:30


1.중국 선교의 선구자 '허드슨 테일러'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1832-1905)는 1832년 5월 21일
영국 요크셔주 반슬레에서 태어났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복음적인 부모의 영향을 받아 
5살이 되자 두 동생을 앉혀 놓고 설교를 하곤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웅변이 뛰어난 감리교 지방 설교자이자 약사이며, 
그의 어머니는 매우 온화하고 인내심이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아버지의 능력과 어머니의 온유한 성품을 물려받았습니다. 
그의 어머니 아멜리아가 허드슨 테일러를 임신했을 때부터 
남편 제임스 테일러와 그 아이를 놓고 
중국의 사역자로 부르시길 서원 기도하였습니다.
허드슨 테일러의 부모님은 약제사였는데, 항상 그의 약국에는
사람들로 가득찼으며, 그의 친구들은 항상 모이면 
감리교회의 발전상황과 선교사역에 대해 대화를 나누곤 하였습니다. 
특히 중국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어려서부터 어른들의 말을 곧잘 듣고, 
또한 그의 여동생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러한 허드슨 테일러는 막연하나마 어릴 때부터 
중국선교사로 헌신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어른이 되면 반드시 다른 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선교사가 되면 중국으로 가겠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가 훌륭한 인격을 가진 신앙인이 되도록 교육에 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허드슨이 11살이 되어 학교에 다니면서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던 그가 학교에 가서 책상 위에 엎드려 기도하면
 "와! 허드슨이 기도한다"하며 아이들이 비웃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후 그는 학교를 그만 두었고 15살의 나이에 한 은행에 취직하였습니다.
그는 선배 동료들의 나쁜 영향으로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인가 하는 생각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징계로 시력이 나빠져 실직하게 되어 
무의미와 절망 가운데 하루하루 고통하였습니다. 
비록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분위기에서 자라났지만 
테일러는 17세가 되어서야 회심하였습니다. 
그때는 1849년 여름 그의 어머니가 친구를 만나기 위해 
멀리 가고 안 계신 때였습니다. 
소년 테일러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이 책 저 책을 뒤져보다가 어떤 종교적인 소책자를 발견했습니다.
영적으로 감동 깊은 것이라기 보다는 
재미있게 보여서 읽기 위해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책을 읽어 나가다 그는 엎드렸습니다.
"성령께서 내 영혼에 기쁨과 확신의 빛을 비추셨다....
영접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 수밖에 없었다." 
2주일 후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자 그는 자신의 회심에 관하여 얘기했으나 
어머니는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2주일 전 친구 집에서 갑자기 아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라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강하게 느껴 하나님이 그녀에게 확신을 주실 때까지 
친구의 방에서 기도했다는 간증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때 허드슨 테일러는 죄를 깊이 깨닫게 되며, 
죄에 대한 완전한 구속과 온전한 값을 지불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으로 인해 자신의 빚이 탕감되고,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심을 느꼈으며, 자신은 그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에게 알리지는 않았지만 중국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선교사로 그 나라에 갈 수 있도록 기도했으며, 
아주 어린 시절에 W.H. 메드허스트의 (China)를 읽고 테일러의 생각은 
그 나라를 향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모아서 남부럽지 않게 사느냐 하는데 
온 관심을 쏟았던 그가 이제는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만을 위해서 살 수 있을까 주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그후 글리너라는 선교잡지를 구독하기 시작했으며 
중국협회 (Chinese Association)에 편지하여 사역소개와 자료 요청을 하게 된다. 
그후 반즐리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가 중국선교를 말씀드리자 
목사님은 "거기엔 어떻게 가려하지?" 
"모릅니다 하지만 옛날 유대 땅에서 열두 제자와 70문도가 
지팡이도 전대도 먹을 것도 돈도 없이 자기들을 보내시는 주님이 곧 
자기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이시기도 한 것을 믿으며 떠났던 것처럼 
저도 그렇게 가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씀드리자 
목사님은 허드슨 테일러에게 
"오, 얘야. 이제 네가 크면 지금보다 더 현명해 질 거란다 .
그런 생각은 예수님이 이세상에 계시던 시절에는 통할는지 몰라도 
지금은 어림없는 일이다"라고 일축해 버렸다. 
후에 테일러는 이 일을 기억하면서 
"나는 그후로 커서 어른이 되었지만 결코 더 현명해 지지는 않았다. 
우리가 주님의 방법을 따르려 한다면 그리고 그분께서 
그분의 첫 제자들에게 주셨던 확신을 우리의 지침으로 삼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때 그들 시대에 적합했던 그것들이 지금 우리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합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라고 썼다. 
또한 항상 하나님 말씀을 듣는 일에 시간을 보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고 이어 전에 알지 못했던 
그 어느 것과도 비길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를 위하여 해주신 일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하나님, 제게 저의 사랑과 감사의 표시로써 
뭔가 하나님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확신이 있은 다음 
허드슨에게는 하나님이 자기의 생애가 어떻게 쓰여지기를 원하시는지 
깨달았다는 명백한 확신이 찾아왔다.
"나는 내가 전능자와의 언약속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그 언약을 철회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음성이 내게 너의 기도는 응답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시간 이후로 내가 중국으로 부름 받았다는 확신은 
한번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허드슨 테일러는의 선교사로서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가득차있었고, 
그 중국 영혼들을 생각하며 날마다 기도하며 사역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하게된다 
필생의 사업을 위해 자신을 준비시킬 목적으로, 
그는 헐에서 어떤 의사의 조수로 일했으며 
그후 런던병원에서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기독교를 향한 대규모운동으로 잘못 추측되었던 태평천국의 난으로 인하여 
중국에 대해 더 큰 관심과, 그리고 중국의 근접성에 관하여 
귀츨라프가 기록한 선명하나 과장된 보고서의 결과, 
[중국복음 전도협회]가 창설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 선교사로 부르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기본적인 훈련에 착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올바른 정신자세와 생활태도 그리고 건강한 몸을 위해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잠과 음식을 절제하는 훈련을 하였습니다. 
교회생활과  전도생활을 충실히 하였습니다. 
중국어를 배우고 의술을 익혔습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고자 빈민촌으로 거처를 정하는 장막훈련을 하였습니다. 
이 기간동안 테일러는 선교사역을 준비하기 위해 
철저한 자기부인의 훈련을 하였습니다.
오직 믿음만으로 살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테일러는 생활에서도 선교훈련을 받는다라고 생각하고, 
영국에서의 편안한 생활을 버리고 고생스러운 생활을 견디는 법을 
배우기 위해 침대도 없애고 딱딱한 바닥에서 생활을 하기 시작합니다. 
식사도 가장 값이 싼 청어를 커피와 함께 삼키기도 하며, 
감자 대신 콩과 쌀 푸딩을 먹고 양배추를 식초에 절여서 먹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매일 사과 한 덩어리와 빵만 먹어 야위게 되었으며, 
그의 조그만 다락방은 옛날에 그가 썼던 좋은 방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초라했습니다. 
심지어 밀린 임금을 지불해 달라는 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중국에 가서 사역한다면 내가 필요하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얻을 수 없다. 
내가 의지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그러므로 영국을 떠나기 전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만으로 육신생활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허약하던 몸이 영양실조로 더욱 약해져 갔으며 
해부학을 배우는 동안 실수로 병균에 감염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악성열병'에 거의 생명을 잃을 뻔했으며, 
여러 달 동안 의학공부를 쉬어야만 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랑하는 여인이 
"당신처럼 헌신적인 사람  처음봐요. 그래서 너무 부담스러워요."하며  
청혼을 거절하였습니다.
중국선교냐 결혼이냐 하는 문제 앞에서 그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 
삶의 방향을 정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시험을 이겼습니다. 
허드슨은 물질이 전혀 없는 형편에서 중국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기도만이 이 문제의 해결책임을 믿고,기도로써 물질을 공급받고자 하였습니다. 
한번은 허드슨 테일러가 커다란 병원에 실습생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아버지와 중국선교협회로부터 생활비를 부담해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 제안을 수락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가 게을러지고, 
그만큼 중국선교에 대한 훈련도 안일해질까 두려워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중국어 공부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는 중국어 문법책도 없이 만다린어로된 누가복음을 가지고 
사촌인 존과 함께 중국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영어성경에서 누가복음의 짧은 구절하나를 뽑은 다음 
그 절의 한 단어를 놓고 그 단어와 같은 단어가 들어있는 성경 구절을 
되는대로 많이 찾습니다. 
그 다음 처음의 그 절을 중국어 성경에서 찾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공통된 한자가 나오는데 
그것이 최초의 영어단어에 해당하는 중국에 글자가 됩니다. 
그 다음 종이 쪽지에 영어 단어와 한자를 같이 쓴 다음 
여러 군데에서 쓰임을 정리하다 마침내 확정되면 
잉크로 쓰기 시작해 최초의 사전을 만듭니다. 
테일러는 이렇게 공부하여 얼마 후엔 웬만한 중국어 한자는 다 알게 됩니다.
그 후 라틴어와 히브리어 헬라어도 공부를 하게 됩니다.
어느날 테일러에게 글리너의 편집국장인 찰스버드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테일러에게 중국선교를 이야기하며, 당신이 의사공부를 중지하고 
지금 당장 중국으로 들어가길 원한다면 우리는 자네를 파송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1년만 공부하면 의사가 되는 터이지만 
허드슨 테일러는 고민할 여지도 없이 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1853년 9월19일 CES(Chinese Evangelization Society) 
중국 선교회라는 단체의 파송을 받아 중국선교의 길로 들어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