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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산[Mount Everest,─山]

好學 2012. 10. 9. 19:02

 

에베레스트산[Mount Everest,─]

 

 

인도 북동쪽, 네팔과 중국(티베트) 국경에 솟아 있는 세계 최고봉.

 

 

 

위치 인도 북동쪽, 네팔과 중국(티베트) 국경
높이 8,848m
  • 에베레스트산

 

 

인도의 측량국장 앤드루 워가 1846년부터 1855년까지 히말라야 산계의 3각측량을 계속하였는데, 특히 히말라야의 고봉 79개를 커다란 경위의()로 정밀 측정한 결과, 1852년까지 피크 15(인도 측량국 번호)라고만 부르던 이 산이 세계 최고임을 확인하였다.

현지명이 1865년까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측량국장 워의 제창으로 전임자 에버리스트의 공적을 기려 마운트 에베레스트라고 명명하였다. 히말라야의 산이름에 개인의 이름을 붙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후 몇 가지 명칭이 보고되었는데, 티베트에서 옛부터 초모룽마(Chomo Lungma:세계의 이라는 뜻)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특히 스벤 헤딘이 프랑스 예수회가 제작하여 1733년에 공간()한 지도에 이 명칭이 사용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초모룽마로 고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으나 찬성을 얻지 못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아시아의 국가들이 잇달아 독립하여 양상이 바뀌었는데, 특히 중국은 주무랑마[] 이외의 명칭을 인정하지 않으며, 네팔에서는 사가르마타(Sagarmatha)라 부른다. 에베레스트 최초의 공식높이는 약 8,840m였는데, 이는 1852년 에베레스트에서 백 수십km나 떨어진 벵골평야의 6개 기점에서 측량한 것이다. 그뒤 밸러드는 약 8,880m, 헌터는 약 8,863m라고 주장하였다. 1954년에는 가라티가 약 8,848m라는 새 수치를 발표하였는데, 이를 1975년부터 공식높이로 삼고 있다. 1999년 5월 미국탐험대는 GPS 장비를 이용하여 이 산이 8850m라고 밝혔으나 네팔 정부는 공식적인 높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2005년 중국의 정부기관에서 다시 측정한 이 산의 높이가 8844.4m라고 밝히기도 했다.

 

에베레스트의 산정 부근에는 회색의 석회암이 있고, 그 아래쪽에는 편암(천매암() 등의 변성암이 계속되는데, 이는 고생대 말의 해역()에 퇴적한 것으로 보인다. 그후 지층이 조산운동으로 밀려 올라갔으며, 아직도 융기운동이 산정의 고도를 높이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산등성이와 절벽은 빙하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는 빙식작용의 결과이다. 등정로가 되어 있는 쿰부 빙하도 그 중의 하나이며, 빙하는 중력에 의하여 서서히 낮은 대로 이동하면서 침식한다. 기상 조건에 따라 등반 시기는 계절풍(몬순)을 피하여 5월 중순∼6월 초 또는 9월 말∼10월 중순을 택하는 것이 보통이다.

 

등산사

1907년에 알파인 클럽(영국 산악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에베레스트 등정 계획이 세워졌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네팔이 통상수교거부정책을 펴고 있었으므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영국이 제1차 원정대를 보낸 것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21년이며, 그후 1922, 1924, 1933, 1935, 1936, 1938년 티베트 쪽에서 도전하였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51년에 네팔을 경유하는 루트가 개척되어 1952년에 스위스대가 2차례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같은 해에 소련대도 북쪽으로 도전하였다고 하나 자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1953년 5월 29일 J.헌트를 대장으로 하는 영국대의 E.힐러리와 셰르파인 텐징이 첫 등정에 성공하였다. 이들의 성공은 대원과 셰르파 전원의 협동, 산소 공급기의 사용, 좋은 날씨에 힘입은 바가 컸다. 베이스캠프의 설치는 4월 13일이었으며, 10일 후에는 최초의 난관인 아이스폴(빙하의 절벽)을 넘어 전진기지 건설이 완료되었다. 그후 정상 공격 기지가 에베레스트의 남쪽 안부()인 사우스콜에 설치되어 5월 26일에 제1차 정상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28일 힐러리와 텐징은 -27℃의 임시캠프에서 하룻밤을 세우고, 29일 정오쯤 정상을 정복하였다. 15분 후에 힐러리는 "더 이상 스텝(빙하·눈골짜기 등의 급사면을 오르내리기 위해 파놓은 계단)을 만들 필요도 없고, 횡단할 산등성이도 없으며, 등정의 일념에 불타는 우리를 애태우는 바위나 얼음의 융기도 이제 없다"는 안도감을 가지고 하강길에 올랐다. 이 쾌거는 동행한 토마스 스토바트 등에 의해 《에베레스트 정복》(1953)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공개되었다.

그후 스위스(1956)·중국(1960)·미국(1963)·인도(1965)·일본(1970)·이탈리아(1973) 원정대가 등정하였으며, 가장 어려운 남벽 루트도 영국원정대가 1975년에 정복하였다. 한국은 1977년 고상돈()이 처음 등정하였고, 1990년에는 복진영·김재수·박창우의 세 사람이 힐러리가 이용한 루트로 등정하였다.

 

 

 

로체산[Lhotse Mt.,─] 이원(E1)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뤄쯔펑[]이라고 한다. 높이 8,516m. 네팔과 티베트 국경을 이루는 이암() 계통의 산등성이를 따라 8,000m를 넘는 3개의 뾰족한 봉우리로 되어 있다. 에베레스트에 가까운 쪽이 제1봉이고, 제2봉은 8,400m이다. 에베레스트산에 대한 편향() 때문에 오랫동안 등반대의 관심 밖에 있었으나 1956년 5월 18일 스위스의 F.루흐징거 등반대가 첫 등정에 성공하였다. 한국은 1988년 10월 2일 첫 등정하였다.

 

K2[K2] 峰

 

카라코람산맥의 중앙부에 있는 산. 높이 8,611m. 발토로 빙하 북쪽에 솟아 있는 고봉으로 에베레스트산에 이은 세계 제2의 고봉이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회록색을 띤 4각추형()의 산체()는 지질적으로 보면 편마암이라고 불리는 변성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편리면()이 사방으로 약 30°의 경사로 완만하게 깍이어 보기 좋은 피라미드 모양을 이루고 있다.

1856년 인도 측량국의 몽고메리가 카슈미르에서 바라본 카라코람의 고봉을 순차적으로 K1, K2,…K32까지 기록한 데서 "K2"라는 별칭이 붙었으며, 이는 카라코람의 2호라는 뜻으로, 당시 현지에서 부르는 명칭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 기호가 그대로 명칭으로 이용되었다.

산의 위치와 높이는 1858년 카슈미르 측후소에 의하여 정확하게 측정되었으며, 그 후 이 산이 토속명()으로 답상(Dapsang), 또는 초고리(Chogori)라고 불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1861년 고드윈오스턴이 발토로 빙하를 발견한 후 처음으로 K2에 접근한 업적을 기념하여 고드윈오스틴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902년 영국의 에켄슈타인 탐험대가 4각추의 북동 능선에서 6,700m 높이까지 도달하였으며, 1909년 이탈리아의 아브루치공이 인솔하는 탐험대가 등반하여, 학술조사와 함께 4개의 능선을 철저하게 조사하였다. 따라서, 남동 능선을 아브루치릉이라고도 한다.

1938년 미국의 하우스톤 탐험대가 남동 능선을 정복하고 7,925m까지 등반하였으며, 이어 1939년 역시 미국의 위스너 탐험대가 8,373m의 높이까지 이르렀으나, 처음으로 4명의 희생자를 냈다. 1953년 제2차 하우스톤 탐험대가 7,925m 지점까지 이르렀으나, 시기()와 날씨 관계로 1명의 희생자를 내고 하산하였다. 1954년 이탈리아의 데시오 탐험대가 원정에 나서 아브루치공이 개척한 아브루치릉을 정복하고, 7월 31일 드디어 첫 등정에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