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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전쟁 [제3차 중동전쟁]

好學 2012. 2. 11. 04:23

6일 전쟁 [제3차 중동전쟁]

 

이스라엘군과 아랍군사이에 벌여졌던 이른바 6일전쟁이라고 불리운 이전쟁은 단기전의 승리에 공군력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증명한 사건이었다. 이스라엘군 ( IDF : Israel Defence Force )이 이룩한 전격적인 승리의 배경에는 눈부신 공군의 활약이 있었다.

 

* 전쟁의 개요 *

2차대전이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몰아내고 중동에 자리잡은후 이스라엘과 아랍연합은 원수지간으로 지내게 되었고, 이후 1, 2차 중동전이 벌어지면서 양측의 관예는 점점 더 불편한 사이가 되어갔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서방진영의 지원을 받고, 아랍제국은 소련의 지원을 받게되는 대리전쟁의 최일선 지역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중동의 불안정한 평화는 1964년 카이로에서 열린 아랍연합 정상회의에 의해서 동요되기 시작했다.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등의 이스라엘 접경국들의 요르단강의 흐름을 바꾸려는 계획에 합의를 한 것이다. 이스라엘로서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상황으로서, 매우 중요한 관개용수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한강이나 낙동강이 없어진다는 것 보다 더 중대한 위기상황이었다.)

이 계획이 점점 구체화 되어가면서 토목공사가 착수되기에 이르자, 1964년 11월 이스라엘군이 시리아군의 도발을 빌미로 요르단강에서 작업중인 아랍의 토목중장비에 대하여 전차와 항공기를 동원하여 공격을 가했다. 그후 수개월에 걸쳐서 양측간에 충돌이 있었고, 이스라엘의 공격에 시달린 아랍측은 결국 이 계획을 잠정적으로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1966년 새롭게 결성된 PLO는 시리아 정부의 비호아래 이스라엘에 대하여 게릴라 기습작전을 실시했다. 게다가 67년부터 시리아에 의한 골란고원에 위치한 포대에서 야포사격이 급증했으며, 이에 대해 이스라엘이 가차없는 반격을 하면서, 드디어 전차와 항공기들이 조우한 대규모 충돌이 벌어졌다. 골란고원 상공의 공중전에서 6대의 시리아 미그21이 이스라엘의 미라쥬3에게 격추를 당했으며 이스라엘의 피해는 없었다.

상황이 점점 악화되자, 이집트를 위시한 타 아랍제국이 시리아와 이스라엘간의 벌어지는 국경충돌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같은 아랍형제를 자처하는 아랍제국은 드디어 67년 5월 국경에서 이스라엘군의 전면 철수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이스라엘도 이에대하여 5월20일 전국민동원령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서 이틀후 이집트이 낫세르 대통령은 티란해협을 봉쇄했으며 이스라엘 남부 에라트항 으로 향하는 선박의 운항을 막았다. 점점 악화되는 관계속에 양측의 감정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고, 드디어 이스라엘과 아랍이 군사력을 동원한 전면전에 빠지게 되었다. 

 

* 이스라엘의 공군력 *

2차중동전이후 대부분의 항공기가 프랑스제였던 이스라엘공군의 주력은 역시 최신 미라쥬 IIIC였다. 이 삼각날개의 전투기는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전투기로서 아랍제국의 미그21에 충분히 대응을 할수 있었다.

* 이스라엘의 공군력 *

- 미라쥬 IIIC 전투기 3개대대 (72대)

- 슈페르 미스텔 B-2 전폭기 1개대대 (18대)

- 우라강 전폭기 2개대대 (40대)

- 미스테르 IV-5A 전폭기 2개대대 (50대)

- 서드 바우톨 IIA 전폭기 1개대대 (25대)

- 마지스텔 훈련기 2개대대 (76대)

슈페르 미스텔 B-2도 역시 우수한 전투기로서 미그19에 맞먹는 성능을 가진 기종이었다. 이스라엘의 주력 대지 공격기는 미스텔 IV-5A 로서 2문의 30mm DEFA기관포와 각종폭탄,로켓탄을 장비할수있었다. 직선익의 우라강전폭기는 6일전쟁에 투입된 IDF의 항공기중 가장 구식이었다. 그러나 충분한 비행기가 없었으므로 사용할수밖에 없었다.서드 바우톨 IIA전폭기는 IDF의 유일한 공격기였다. 지상공격을 위한 무장이 다량 탑재가능했다. 마지스텔기는 훈련기임에도 2정의 7.26mm기총과 2개의 100파운도 폭탄을 장비하고 전쟁에 참가했다.공군은 IDF의 한조직으로서 기본편성단위는 비행단이었다. 1개비행단은 2개대대이상으로 구성이 되었다.

[출격 준비중인 슈페르 미스텔 IV - 미라쥬 IIIC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주력 제공전투기였다. 역시 6일전쟁중 맹활약한 기체이다.]

1960년대를 통하여 강한 적의를 가진 4개나라에 지리적으로 포위된 상태에 위치한 이스라엘은 아랍의 공군력에 대하여 1/4수준의 항공기를 가진상태였다. 이러한 수적인 열세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한 공군조종사 양성에 온 힘을 기울이게 된다. 67년까지 IDF 의 조종사 훈련은 실로 지독할 정도였다. 징집은 18세였고 학생조종사로 입대하여 5년간 병역에 임했다. 그리고 이 학생조종사들은 우수한 조종사로 인정될 때까지 2년이상의 훈련을 받아야 했다. 조종사의 훈련의 엄격한 정도는 상상을 초월하여 한 클라스에서 1명만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조종사들에게는 항상 실전과 같은 공대공/공대지 훈련이 실시되었고 조종사들은 최신기술인 공대공 유도탄에 관한 전술을 새로 습득하는 한편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의 기총 사격훈련을 매우 중시했다.

비행편대의 기본단위는 2대였으나 일반적으로 임무수행의 최소단위는 4대의 전투기로서 행동했다. 전투개시후의 IDF의 전술은 개인의 독창성을 중히 여기는 것이었다. 윙맨은 편대장기에게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목표를 공격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이것은 2차대전이후부터 한국전까지의 일반적인 전술과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이때까지 적의 편대와의 접전에서는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이러한 전술을 이스라엘은 시도했으며 이에 관한 독자적인 전술개발과 훈련을 실시했다. 1965,67년도에 각각 미그21,17기 1대씩을 몰고 아랍조종사들이 망명해왔으므로 이를 이용하여 효과적인 실전 모의 공중전이 실시되었다. 

 

* 아랍제국의 공군력 *

- 여기서 아랍제국이라 함은 반 이스라엘 노선이 매우 강했던 4개나라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를 말한다. 이중 이스라엘에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주도했던 나라는 이집트와 시리아였다.  

아랍제국중 가장 강력한 공군력을 보유한 6일전쟁 전야의 이집트공군은 총 병력 2만명이었으며 600대정도의 항공기가 있었다. 이중 450대정도가 전투기였으며 20개이상의 비행대대로 편성이 되어있었다. 

* 이집트 공군 *

- 미그 21 전투 요격기 6개대대 120대

- 미그 19 전투기 4개대대 80대

- 미그 15&17 전투기 5개대대 150대

- 수호이 7 전폭기 1개대대 30대

- Tu-16 폭격기 2개대대 30대

- IL-28 폭격기 3개대대 40대

 

이중 핵심전력이었던 미그21은 소련이 자랑하는 최신의 기종으로서 표준형 미그-21F와 미그-21PF의 2종이었다. 미그-21PF는 F형에 비하여 탐지거리가 큰 레이더를 장비하여 쇼크콘 (기수의 뾰족한 부분)이 대형이었으며 추력도 800파운드이상 향상된 신형 미그였다. 그 외에 미그21부대를 보강하기 위한 미그-15,17,19 비행대대들이 전력화되어 있었다. 게다가 IL-78, Tu-16 폭격기들이 있었으며 이는 이스라엘에 대단한 위협이 되는 전략폭격기들이었다.

이집트의 전투기들은 약 25개소의 항공기지에 전개되어있었으며 그 대부분은 카이로나 나일 델타지대에 집중적으로 전개하고 있었다. 이 기지들은 각종 레이더및 SA-2가이드라인 지대공 SAM에 의하여 방어되고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비행기들이 안전하게 주기할 수있는 shelter(엄폐호)가 없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기체들 이 지상에 일렬로 주기하고 있었으며 야간엔 커버를 씌워서 습기로 부터 방어를 했다.( 으..!! 원시적)

Mig-17 [이집트 공군의 미그-17F : 뛰어난 운동성으로 오히려 미그-21보다 격추시키기가 어려운 기체였다고 한다.]

이집트공군은 이러한 급속한 수 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조종사의 양성에는 실패한 대표적인 경우였다. 사실 67년 당시에는 이집트공군 조종사들이 태부족이었다. 전투기는 넘쳐 났으나 이 전투기를 제대로 조종할 수 있는 조종사가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그나마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소련식의 수적 우세와 속도를 이용한 일격이탈 전술을 구사하도록 교육을 받았으며 근접 공중전에 대한 훈련은 간과하고 있었다. 소련식 요격전술은 지상 레이더관제사의 지시로 전투기를 요격위치에 유도하는 방식이었으며 이는 베트남공군에 의해 미공군 공격편대가 큰 피해를 보게 되어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는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할 만한 전술이었다. 그러나 이 전술을 제대로 읶히기는 매우 어려웠다. 더구나 조종사들의 비행시간부족으로 공중전력은 질적으로는 허약한 상태였다. 다만 전투조종사의 1/3이 예맨 내전에 참전한적있는 경험자라는 것이 유일한 장점이었다. 

역시 강한 반 이스라엘 노선의 시리아는 67년현재 대략 150대정도의 공군력이었다. 전력은 3개연대로 분산되었으며 1개연대는 각12-16대로 편성된 3개의 비행대대로 구성이 되어있었다.

* 시리아 공군

-미그21전투요격기 2개대대 36대

-미그17전폭기 4개대대 90대

-IL-28 폭격기 1개대대 6대

 

시리아 역시 소련식의 전술을 기초로 조종사들을 훈련시켰다. 조종사들은 L-29 델핀과 미그15UTI 훈련기를 통하여 시리아에서 직접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미그 21,17 조종사들의 일부는 바르샤바조약국들로 연수를 가서 교육을 받았다. 역시 시리아의 취약점은 경험이 있는 조종사가 부족한 것이었다.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접경하고 있는 소국으로서 이스라엘과의 싸움이 벌어지면 단숨에 두들겨 맞는 목표가 될 수 있어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은 기피하고 있었지만 주변 아랍 형제국의 압력으로 중간에 끼인 불쌍한 존재였다. 하지만 요르단은 여타 아랍국들과는 달리 친미노선을 걷고 있었으며 무장도 영국제와 미제였다.공군력은 수적으로는 적었으나 조종사의 자질은 타 아랍국에 비해서 비교적 정예화 되어있었다. 

* 요르단 공군 *

- 호커헌터 전투기 22대

- F-104 스타파이터 6대

주력은 아음속기지만 미그17을 웃도는 기동성을 자랑하는 호커헌터기였다. 그리고 최신의 F-104스타파이터가 6기 도입되어 실전배치되었고, 67년현재 30기의 추가분을 미국에 발주 중이었다. 요르단 공군은 수적 으로 너무 적었으므로 타 아랍군이 출격하면 같이 작전을 펼치기로 한 상태였다. 

67년 당시의 이라크공군은 대략 220대정도의 항공기를 장비하고 있었다. 이스라엘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가 아니어서 육군력보다는 공군력에 치중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려 했다.  

* 이라크 공군 *

-미그 21 전투요격기 2개대대 20대

-미그 19 전투기 1개대대 15대

-미그 17 전투기 2개대대 20대

-호커 헌터 전투기 3개대대 33대

-IL-28 폭격기 1개대대 10대

-Tu-16 폭격기 1개대대 12대

이라크는 58년까지 영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으나 이후는 타 아랍제국처럼 소련의 영향력이 증대하여 영국제 헌터기와 미그를 동시에 운영하는 특이한 형태였다. 호커 헌터는 미그-17을 능가하는 우수한 공중기동성능을 가진 기체였다. 최신 미그-21은 20대에 불과했으나, 조종사의 수준은 비교적 높았으며 대부분이 인도에서 공중전 훈련을 받았다. 인도는 파키스탄과 의 전쟁을 경험한 다수의 경험조종사들이 있어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이라크조종사들에게 실시할 수 있었다. 게다가 쿠르드 족의 독립전쟁당시에 지상지원의 경험이 있는 조종사들도 다수있었다.

 

* 공격부대 이륙하라! *

1967년 6월 5일 월요일 이스라엘 총참모부의 선제공격결정에 따라 대기하고 있던 IDF의 전투기들이 명령과 함께 굉음을 울리며 아침의 여명속으로 속속 지상을 떠나갔다. 이들의 목표는 4개 아랍제국의 공군력을 지상에서 격멸하는 것이었다.

[ 미라쥬 IIIC 가 여명을 뚫고 이륙한다! 1967년 6월 5일 새벽의 상황이다. ]

역사에 기록된 가장 성공적인 항공기에 의한 기습작전이라면 당연히 일본군의 '진주만기습'을 떠올리겠지만 6일전쟁의 IDF도 이를 오히려 능가할만한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전쟁전문가들로부터 항공기가 전쟁에 사용된 이래 가장 적에게 치명상을 입힌 기습작전이라는 평을 얻게된 것이다.

사전에 모사드로 부터 수집된 정보에 따라 아랍군의 초계비행이 허술한 시간대는 새벽무렵이라는 것과, 아랍군의 비행장 위치와 방어상황을 손바작 보듯이 알고 있던 이스라엘 공군기들은 이집트군을 주목표로 하여 동시에 주변 4개국의 비행장을 향해서 마치 거미줄과 같이 퍼져나갔다.

가장 첫번째 공격을 받은것은 이집트 공군이었다. 레이다망을 피해 사람이 살지않는 사막의 상공을 저공으로 침투한 IDF의 공격군 제1파였던 미라쥬 40기는 각 4기로 편성된 10개 편대로 이집트 항공기지중 가장 중요한 10개의 항공기지를 기습했다. 즉 1개편대가 1개의 기지를 떠 맡은 것이다. 이 10개의 항공기지중 안개에 쌓여있던 파이트기지를 제외한 나머지 9곳은 동시에 공격을 받았으며 이 파이트도 곧 공격을 받게 되었다.

적기지 상공에 다다른 이스라엘군의 조종사들은 적기의 초계비행도 전혀 없는 상태라는 것과, 지상의 대공포가 전혀 반응을 하지 않는 것, 게다가 이집트의 최신 미그-21기들이 줄지어서 지상에 얌전히 주기해 있는 모습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곧 이스라엘의 미라쥬IIIC는 마치 하늘에서 불벼락이 치듯이 지상의 이집트 공군기들을 연습 사격하듯이 격파하였다. 이집트의 공군기들은 안전한 쉘터(방호벽)에 보호되지 않고 지상에 일렬로 주기 하고 있었으므로 IDF의 미라쥬들에게는 연습용 사격목표보다 더 쉬운 먹이었던 것이다. 곧 이러한 이집트 전투기들이 30mm DEFA기관포 몇방을 맞고는 화염에 휩쌓여 불타올랐다. 지상의 이집트공군은 아비규환에 빠져들었고 이 혼란의 와중에 10군데의 항공기지에서 비상 이륙에 성공한 미그21기들은 총 8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공중에서 모두 격추를 당했다. 첫공격에서 미라쥬 IIIC 2기도 공중전와중에서 격추되었다.이집트가 보유했던 폭격기는 90%이상이 대파당했으며 전투기세력도 제1공격에서 60%이상 파괴되었다.10분간의 지상공격이 끝나자 제 1파 공격대는 귀환길에 올랐으며 이들이 지평선으로 사라짐과 동시에 제 2파가 공격을 해왔다. 이스라엘은 가동가능한 작전기들을 모두 투입하고 있었으며 제 1파가 공격대는 돌아오자마자 15분정도의 재정비를 받고 다시 출격을 하였다.

제2파공격대들은 이집트의 나머지 전투기세력과 활주로를 목표로 하였으며 우라강전폭기와 마지스텔기들의 상공에서 기총소사와 폭격으로 이집트의 잔존세력을 일소해 버렸다. 활주로는 대활주로 폭탄인 디버폭탄에 의하여 수많은 구덩이들이 생겼으며 이륙을 강행하던 많은 미그-21과 미그-19들이 이 구덩이에 바퀴가 빠져 지상에서 대파되었다. 이집트의 공군력이 개전의 첫날 새벽에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완벽에 가까운 기습공격속에서도 공격을 면한 헐가다기지의 미그21 12대와 미그19 8대가 급히 이륙을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지상의 관제유도가 불분명하여 적기들을 포착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공중 엄호를 하던 미라쥬 IIIC들에게 격추를 당하거나 연료부족으로 불시착하였다.

[미라쥬 IIIC의 건카메라에 잡힌 미그-21 격추장면, 몇발의 DEFA 기관포탄이 명중되자 순식간에 화염에 쌓였다.]

2시간여의 공격이 끝난후, 전쟁의 첫날 아침이 되자 그토록 자랑을 했던 이집트의 공군력은 이미 지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날 탄생한 여러 ACE중 한명인 지오라중위(이스라엘은 조종사의 풀네임을 공개하지 않는다. 이는 아랍의 테러에서 그과 가족을 보호하기위한 조치였으며 영웅을 만들지 않겠다는 IDF의 방침이기도 했다.)는 하루동안에 적기 6기를 격추했으며 그는 다음과 같이 공중전을 회상하고 있다.

"나는 수에즈운하근처에서 공중초계를 하고있었 그때 1기의 미그21이 이륙하여 우리를 향해오고 있었고 그뒤에 또한대의 보기(BOGEY- 미확인 비행물체)가 있었다. 우리가 적을 발견하자마자 적도 우리를 발견하여 전투가 시작되었다. 적의 선두기는 나의 편대장기와 공중전에 들어갔으며 첫 정면교차이후 곧 연기를 뿜으며 격추당했다. 나는 후방의 적기를 공격했는데 1분간의 근접선회끝에 적기의 후방에 붙는데 성공했다 거리는 350미터정도였고 1초간의 사격을 3회실시했다. 그러자 곧 적기의 꼬리부분에서 연기가 뿜어나오더니 적기는 스핀에 빠져 지상에 격돌했다."

그후 지오라중위는 아브 스웨일기지상공으로 돌아왔으며 이때 2기의 미라쥬기들이 지상의 이집트 IL-28폭격기에 기관포 사격을 가하고 있는것을 보았다. 이때 우군기들의 배후에 미그21 2기가 날아오는것을 목격한 그는 곧 아프터버너를 점화하여 미그기들을 공격했다.

"나는 우측의 적기를 노렸으며 편대장은 좌측의 적기를 노렸다. 적은 내가 300m정도까지 접근하자 적은 나의 위치를 알아차렸으며 좌측으로 브레이크하려했다. 덕분에 곧 거리는 180미터로 단축되었고 조준경내에 적기를 넣고 단시간의 사격을 하자 적기는 공중에서 폭발 했다."

개전의 첫날아침..이미 시리아, 요르단도 같은 운명을 맞고 있었다.

 

* 지상에서 소멸된 아랍공군 *

개전첫날 새벽의 IDF전투기들의 완벽한 기습에 의하여 중동에서 가장 강한공군을 자처하던 이집트는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2시간동안의 IDF 전투기들의 공격을 받고 대부분의 전력을 상실했다. 이집트공군이 궤멸상태에 이르자 공격의 화살은 시리아와 요르단을 향해 돌려졌다. 먼저 요르단은 얼마 안되는 수의 전투기를 이집트가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급보를 전해 듣자마자 발진시켰으며 이들은 이스라엘의 네타니야 항공기지를 공격했다. 그러나 공격목표에는 수송기 2대밖에 없었으며 요르단기들이 귀환하고 있을때 상공에서 미라쥬와 우라강이 공격을 가해왔다. 이후 벌어진 공중전의 와중에서 순식간에 헌터기 4기과 스타파이터2기가 격추당했으며 이스라엘은 1기의 우라강을 상실했다.

[ 요르단 공군의 영국제 호커 헌터 - 기동성이 매우 우수한 전투기였으나, 수적으로 너무 적었다. ]

그러나 엎친데 덮친다고 기지로 돌아온 요르단의 전투기들은 착륙을 할곳이 없었다. 그사이 들이닥쳤던 IDF의 공격대가 활주로에 엄청난 수의 구멍을 뚫어놓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전투기들이 착륙을 감행하다 대파된거나 손상을 입었으며 12시15분쯤에 실시된 IDF의 재공격에 의하여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은 그의 공군력 전부를 상실했고 잔존 공군기들을 이라크로 피신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리아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오전 11시경에 시리아의 공격으로 시작된 공중전에서 미그21기 다수가 격추당했으며 이어 이스라엘의 기습공격부대는 다마스커스 비행장을 비롯한 3개의 주요 비행장에 공격을 가하여 대부분의 시리아기들이 지상에서 격파를 당했다. 아랍군들의 공통적인 실수였던것은, 전투기들의 보호를 위한 쉘터의 설치에 소흘했단 것이었다. 결국 기관포에 의한 공격에 소중한 전투기들을 노출을 시켰으며 미라쥬IIIC는 이들을 30mm DEFA 기관포 2-3방으로 폭발시킬수 있었다.

결국 개전 첫날의 전격적인 기습으로 IDF은 중동의 하늘을 완전하게 손아귀에 넣었다. 요르단은 공군력을 100%상실했으며 이집트군은 90%정도 손상이 되었고 시리아공군은 전투불능상태에 빠졌다. 이스라엘측의 보고와 전후의 조사를 통한 첫날의 전과는 공중전에서 30여기의 격추를 포함한 아랍군기 300기 이상의 격파였으며 대부분은 지상에서 격파되었다. 이스라엘은 미라쥬 2기를 포함한 19 여기정도를 잃었다고 한다.

IDF손실의 대부분은 지상의 대공포화에 의한것이었고 공중전에서 3기가 아랍전투기에게 격추되었다. 그러나 아직 이라크는 건재했으며 이라크와의 항공전투는 개전 2일째인 6월 6일로 예정되었다.

서전에서 이스라엘은 완벽한 작전에 의한 기습공격으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을 완파했다. 이 작전은 첩보기관인 모사드의 활약으로 얻은 각종 정보를 토대로 한 것이었으며 하나의 완벽한 예술과 다름이 없었다! 는 평가를 듣게되었다. 그러나 이집트는 자국 지상군과 국미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일체 은폐하고 있었으며 존재하지 않는 그들의 공군의 '빛나는 전과'를 라디오로 전쟁중내내 떠들어 댔다. 6월 6일부터는 이스라엘 공군은 쾌속진격중인 지상부대를 엄호하는데 주력할 예정이었으나 아직 이라크공군이 남아 있었다!.........

 

* 공격목표 - 이라크 (6월 6일) *

6월6일 새벽.. 이번엔 이라크측이 기습적으로 폭격기를 출격시켰다. 1대의 Tu-16폭격기가 여명속에 이륙을 했다. 막강한 이스라엘의 방공망을 성공적으로 침투한 이 폭격기는 네타니야 항공기지를 급습하였다. 폭격을 받은 지상의 많은 이스라엘공군장병들이 사망했다. 그러나 아랍측에서 유일하게 성공적인 침투를 했던 이폭격기는 곧 대공포화에 명중되어 추락 했다.

오전 9시경 이번엔 레바논이 갑자기 선전포고를 하고 나섰다. 이들은 호커헌터 2기를 이스라엘 영공에 침투시켰으나 곧 미라쥬IIIC의 요격을 받았으며 이내 1기가 피격되고 1기는 도주했다. 그리고 더 이상 레바논은 떠들지 않았다.

이집트의 잔존세력 역시 반격을 가해왔다. 이집트의 지상공격중 가장 성공적이었던것은 시나이반도 중앙부의 이스라엘군 보급기지 공격이었다. 이스라엘군은 오전의 네타니야 기지 폭격을 보복하기로 마음먹고 이라크를 향해 미라쥬편대와 미스텔 4개 편대를 발진시켰다. 미스텔 4개편대는 요르단국경근처의 이라크 항공기지 H-3를 공격하여 역시 성공적인 공격 작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미라쥬 2개편대가 이라크로 더 진출하여 비행장을 공격하려고 사막을 저공으로 날았다. 그러나 이라크의 함정이 상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레이더를 피해 저공으로 침투중이전 미라쥬 2개편대의 상공에서는 호커헌터기에 의한 기습을 받게 되었다. 이라크의 비교적 잘 훈련된 조종사들은 완벽한 기회를 포착하였으며 이스라엘의 후방에서 급강하공격을 시도 했다. 이 전투에서는 이스라엘측이 손해를 더 많이 보았다. 미라쥬는 고기동의 헌터기가 상공에서 기습하자 회피를 할여유를 제대로 갖지 못했으며 5분간의 전투에서 3기가 격추되었다. 이라크의 헌터기는 1대가 격추되었고 미라쥬들은 공격을 포기하고 도주했다.

그러나 이라크는 이러한 일분의 전과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많은 피해를 보았으며 공군력의 보강이 없이는 더이상 이스라엘을 괴롭힐 수 없었다. 결국 2일째의 전투에서 아랍군의 잔존세력이 거의 일소되었으며, IDF는 이제 지상공세에 공/육군의 전력을 집중시키기로 하였다.

그런데.. 지상의 전투에서는 공중에서 벌어진 상황보다 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IDF의 표현대로 '무능한 아랍군'은 지상에서 벌어진 전차전에서도 엄청난 열세를 보이며 도주중이었다.

 

* 이스라엘의 승리 *

하늘에서 공군의 엄청난 활약과 더불어 지상에서의 이스라엘육군의 활약도 항공 전사 연재지만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육군의 전차부대와 보병부대는 2차대전 초기에 독일육군의 전격전이 무색할 정도의 엄청난 속도의 쾌속진격을 했다.  공군이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이점이 있었는데다가 전투기파일럿의 강도높은 훈련이 전차병들에게도 적용이 되어있었다. 200여대의 셔먼전차를 포함한 약 800대의 이스라엘 전차부대는 최신 T-55전차를 포함한 총 2500대에 달하는 아랍제국의 전차부대를 완전히 유린했다.

전차들이 탁트인 사막에서 육안으로 적전차를 확인하고 제1탄을 날릴 수 있는 거리가 1000미터정도라고 한다. 이 거리에서 맞닥뜨린 IDF와 아랍전차부대의 실력차이는 현격했다. IDF전차대의 포수들은 대개 1,2탄에서 적전차를 날려버린 반면, 사격훈련에 소흘하고 수적 우세만으로 승리를 자신했던 아랍군의 전차부대는 무작정 어림짐작으로 주포를 난사했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 IDF측이 전차를 61대 상실한 반면 아랍제국은 이집트군의 손실 1000여대를 포함하여 거의 1600여대의 전차가 파괴되었다. 이스라엘 육군과 공군의 이런 엄청난 승리는 엄격한 훈련과 효율적인 작전에 더불어 아랍측의 나태한 태도와 훈련 소흘에 이유가 있었다.

 

* 항공전 분석 *

6일전쟁이 종결된 후에 이스라엘의 발표에 따르면 최초의 60시간동안에 총 451기의 아랍군기를 격파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중 58기는 공중전에 의한 전과였다. IDF측의 손실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으나 미국측의 조사에 의하면 총 45기를 잃었으며 이중 공중전에서의 손실은 10기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엄청난 전과는 결국 공군의 훈련과 전술에서 이스라엘군이 몇수위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IDF의 전투기 파일럿들은 이 전쟁에서 공중전이 벌어지면 기관포만을 사용했으며, 우수한 근접 공중전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훈련에서 강조한 일격이탈술과 격투전에서의 선회술이 실전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6일전쟁중에 IDF공군의 일등공신은 72대가 보급되어 있었던 프랑스제 미라쥬IIIC였다. 이 미라쥬기들이 공중전에서 항공기 격추의 주역을 담당했다. 그러나 다른 항공기들도 공중전의 전과에 일조를 했다.

슈페르 미스텔기는 마하2의 미그21을 격추하기도 했으며, 우라강전폭기도 미그17과의 공중전에서 승리를 했다. 아랍군의 가창 최신기였던 미그-21은 미라쥬IIIC보다 우세한 추력중량비와 낮은 익면하중을 가지고 있었으며 가속성과 선회성에서도 약간 앞서는 성능이었으나, 대개의 아랍조종사들이 이 우수한 전투기를 성능의 한계까지 사용한 공중전을 시도하지 않았으며, 이는 훈련부족의 탓이 높았다.

IDF파일럿들의 평가에 의하면 이라크의 수준이 가장 높았으며 시리아와 이집트의 수준은 보통 이하인 것으로 평가했다. 전투기별로는 최신기였던 미그-21이 매우 전투손상에 약해서 30미리 DEFA기관포 2-3방이면 공중폭발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비교적 고물이던 미그-17은 오히려 평가가 높았다. 기동성이 우수하여 명중시키기가 힘들었으며 총탄을 많이 맞아야 격추될 만큼 튼튼한 기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아랍군의 몇몇 유능한 조종사들도 미그-21보다는 미그-17을 선호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었다.

만일 이스라엘이 기습에 실패하고 쌍방의 전투기들이 제공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격렬한 공중전이어지는 상황이었다면 IDF의 손실도 컷을 것이며 전쟁이 장기화되었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결국 이 6일 전쟁은 고전적인 세심한 작전과 평소의 엄격한 훈련 그리고 전술적인 독창성이 어우러진 이스라엘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