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책여행]살아가는 방법들

<3> 분배적 정의의 소사(小史)…빈민은 해악일까 구제대상일까

好學 2011. 9. 15. 22:15

<3> 분배적 정의의 소사(小史)…빈민은 해악일까 구제대상일까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의 ‘분배적 정의’는 공적(merit)이 있는 사람들이 특히 그들의 정치적 지위의 측면에서 자신의 공적에 따라 보상받도록 보상하는 원칙을 가리켰다. 분배적 정의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개념으로부터 근대적 개념으로 나아가려면, 우리는 적어도 왜 모든 사람이 빈곤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야 마땅한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국가는 어려움에 처한 이를 돕고 양극화를 막기 위해 가진 자의 재산과 여력을 덜어 빈곤층을 지원한다. 재산을 사회 전체로 분배해 모든 사람이 일정한 수준의 물질적 수단을 제공받도록 보장할 것을 국가에 요구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분배적 정의’의 근대적 의미다. 그러나 이처럼 당연한 듯 여겨지는 빈민보조가 정의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빠르게 봐도 두 세기 전이다.

이 책은 빈민과 빈곤문제에 대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분배적 정의에 관한 국가의 역할과 의무에 대한 서양에서의 의미 변화를 추적했다. 중심적 물음은 빈민이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요구가 법적인 권리(right)의 문제일 수 있는가이다. 법적인 권리를 따지는 이유는 정의가 자애나 지혜와 같은 개념과 달리 ‘합리적이고 강제할 수 있고 실행 가능한’ 덕목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자선과 박애로 인식된 빈민구제가 정의로 인식되기엔 많은 논란과 의미 변화를 거쳐야 했다.

대략 1750년 이전의 서양 사회에서 빈곤은 인간평등과 별개의 문제였고 한편으론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빈곤은 겸손을 배우거나 물질적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축복으로 사실상 빈민과 부자의 삶은 평등하다는 인식으로 받아들여졌다. 교회에서 빈민들을 지원하기도 했지만 이는 자선이나 자비와 관련된 종교적 의무였지 빈민의 권리에 입각한 것은 아니었다. 16세기 중반 등장한 빈민법 역시 빈민과 교회를 통제하려는 시도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원천은 여전히 ‘박애’와 ‘동정’에서 나왔다.

칸트와 루소 등의 사상가들이 활동한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빈곤 구제의 책임이 종교나 철학이 아닌 정치에 돌아가고 ‘사회적 위계질서는 해악’이라는 점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고귀한 신분과 천한 혈통에 대한 개념이 흐릿해지면서 국가가 마땅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재화를 분배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귀족을 비웃는 내용의 연극 ‘피가로의 결혼’ 등장과 프랑스 혁명 등 사회적 흐름도 이와 맥을 같이했다.

18세기 활발해진 부의 재분배 문제는 19세기 정치적 담론으로 이어졌고 20세기 그 개념은 교육과 의료 등으로 확장됐다. 1944년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집, 일자리, 의료, 교육, 노령, 사고 등의 내용을 담은 제2권리장전을 제안했고 그의 부인 엘리노어 루스벨트는 1949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작성에 일조했다. 분배적 정의 개념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대중의 의식 속에 확립된 것이다.

분배적 정의 개념이 확립되는 순간 싹튼 반대 의견도 다뤘다. 빈민은 선천적으로 게으르다는 주장과 함께 복지정책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이다. 식량 및 다른 기본 자원이 부족해져 훗날 인류가 배고픔과 질병으로 죽게 될 것이란 맬서스의 주장이 나온 이후엔 빈민이 빨리 죽어야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배고픔이 빈민에게 노동을 하도록 자극한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분배적 정의’가 어떤 사상가들에 의해 발전했는지, 서양사의 전개에 따른 정책 변화와 사회적 현상을 책은 꼼꼼하게 따라간다. 양극화와 사회 복지 문제가 나날이 큰 이슈로 대두되는 오늘날 이 책에 담긴 논의들을 들여다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