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素
‘素(소)’는 갓 뽑아낸 실을 매달아 놓은 것을 나타낸다. 거기에는 아무런 빛깔이 없으며, 아무런 무늬나 장식이 없다. 이런 빛깔로부터 ‘素’에는 ‘희다, 흰빛’이라는 의미가 생겼다. 흰빛은 공간을 의미하므로 이로부터 ‘비다’라는 의미가 나왔고, 흰빛은 모든 색깔의 근본이므로 ‘근본, 처음’이라는 의미가 생겼다. ‘근본’이라는 의미가 사물과 관련되어 ‘사물의 근본’, 즉 ‘원료, 본바탕’이라는 의미가 나왔고, 사람의 성격과 관련돼 ‘근본적인 성질, 타고난 바탕’이라는 의미가 나왔다.
사람의 성질을 천성(天性)이라고 한다. 천성은 하늘이 준 본래의 성질이라는 말이다. 옛 사람들은 이런 성질이 나쁜 경우는 없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성질, 타고난 바탕’이라는 의미로부터 ‘정성, 진정, 바르다, 옳다, 꾸밈이 없다, 소박하다’라는 의미가 나왔고 ‘근본적인 성질, 타고난 바탕’은 사람이 평소에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평소’라는 의미가 생겼다.
‘素光(소광)’은 ‘흰빛’이라는 뜻이며, ‘素月(소월)’은 ‘흰 달빛’, 즉 ‘밝은 달빛’이라는 뜻이다. 음력 8월에는 한가위가 있어서 달빛이 희므로 음력 8월을 ‘素月’이라 부르기도 한다. 시인 김소월(金素月)의 ‘素月’은 이런 뜻이다. 미술의 데생을 우리말로는 ‘素描(소묘)’라고 하는데, ‘흰 바탕에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描’는 ‘그림을 그리다’라는 뜻이다. ‘素朴(소박)’은 ‘꾸밈없이 순박하다’라는 뜻이다. ‘朴’은 ‘순박하다’라는 뜻이다. ‘素養(소양)’은 ‘평소의 교양’이라는 뜻이다.
손님을 대접할 때 ‘素饌(소찬)입니다만 많이 드십시오’라고 말하는 경우의 ‘素饌’은 ‘고기나 생선이 없는 나물 반찬’, 즉 ‘차린 것이 부족한 소박한 반찬’을 말한다. ‘素餐(소찬)’이라는 말이 있는데, ‘일도 안 하고 나라의 녹을 받는 것’을 나타낸다. 이 경우의 ‘素’는 ‘비다’, 즉 ‘아무 일도 안 하다’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