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여년 전의 女權선언문을 아시나요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 양반 부인 300명
여성의 근대적 권리 주장
"이천만 동포 형제가 (…) 개명(開明)한 신식을 좇아 행할 사이 (…) 어찌하여 우리 여인들은 귀먹고 눈 어두운 병신 모양으로 구규(舊閨·옛날식 규방)만 지키고 있는지 모를 일이로다. (…) 신체와 수족과 이목이 남녀가 다름이 있는가. 어찌하여 병신 모양으로 사나이의 벌어주는 것만 먹고 평생을 심규에 처하여 그 절제만 받으리오."
113년 전 서울 장안에 나붙은 선언서의 한 대목이다.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의 양반 부인 300명 가까이가 주도해 작성한 '여권통문(女權通文)'.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의 근대적 권리를 주장한 문서였다. 남녀 교육·직업 평등과 여성의 정치 참여권 요구 등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인 내용이 원색적 어조에 담겼다. "이왕에 먼저 문명개화한 나라는 남녀가 일반 사람이라 어려서부터 각각 학교에 다니며 각항 재조(재주)를 다 배우고 이목을 넓혀 장성한 후에 사나이와 부부지의(夫婦之義)를 정하여 평생을 살더라도 그 사나이에게 일호도(조금도) 절제를 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극히 공경함을 받음은 다름이 아니라 그 재조와 권리와 신의가 사나이와 같은 이유"라며 성 평등을 주장했다.
당시 언론들도 놀랐다. 황성신문은 9월 8일자에 "하도 놀랍고 신기하여 이를 기재한다"며 전문을 실었다. 9월 13일 제국신문은 "우리나라 부인네들이 이런 말을 하며 이런 사업 창설할 생각이 날 줄을 어찌 뜻하였으리오. 진실로 희한한 배로다(바이로다)"라고 평했고, 독립신문은 "여성 교육을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니 정부기구에 불필요하게 쓰이는 20여만원과 급하지 않은 군사 증액비 100여만원을 모두 여성 교육비에 쓰라"고 호응했다. 통문은 독립신문 영문판인 'The Independence'에도 실렸다. 여권통문에 참여한 부인들은 국내 첫 여성단체인 찬양회를 조직해 이듬해 2월 한국인 최초 여성 교육기관인 순성(順成)여학교까지 세웠다. 당시 선언서에는 북촌 양반 부인 외에도 일부 서민층 부녀와 기생, 지방 부인들까지 동조자가 500명 가까이 됐으며 이후 여성 운동의 효시가 됐다.
한국여성사학회(회장 이송희 신라대 교수)는 오는 24일 이화여대에서 여는 국제학술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여권통문을 재조명한다. 지금껏 여권통문에 대해서는 정부는 물론 여성단체들도 몰랐거나 제대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학회 측은 설명했다.
이송희 회장은 "우리는 세계여성의날인 3월 8일은 알면서 우리 여성이 여권을 처음 선포한 9월 1일은 모른다"면서 "학술회의를 계기로 이런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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