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經信仰/[종합]인물.말씀.강연

아담

好學 2011. 2. 13. 21:06

 

아담



아담은 창세기 첫 사람입니다.

인류의 첫 조상입니다.

아담을 아는 것은 인류역사를 아는 것입니다.

1. 아담의 뜻
아담이라는 말은 <땅><흙>이라는 말입니다. 아담은 첫 사람이기에 조상이 없습니다. 가족이 없습니다.
아담은 땅과 하나님이 합하여진 걸작품입니다. 인간은 땅적인 요소와 하늘적 요소가 합하여진 존재입니다.

2. 아담의 특징
아담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는 사람입니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으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하나님이 <우리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유일신이 아닐가요? 하나님은 한 분입니다. 이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어느 분은 천사를 포함시켜서 <우리가>라고 하였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성삼위가 일체가 되어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

(2) 삼위일체로 창조하셨습니다.
흙으로 만드시고 생령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래서 영혼육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창2;7)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3)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땅을 만드시고 땅을 위하여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사람이 살도록 환경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물을 다스리고 보존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시고 에덴 동산으로 이끌어 오셔서 <다스리라> <번성하라> <지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1;28-30)

(4) 하나님은 아담에게 다 허락하셨어도 한계선 하나를 두셨습니다.
선악과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다 허락하셨어도 선악과 하나만은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5-17)

마귀가 하와를 유혹하였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다가 하늘에서 쫓겨난 존재입니다(사14;12-15)
  그들의 범죄 제목은 4가지 입니다.
(1) 유일신 하나님을 부정한 것입니다.
(2) 피조물의 우상화를 만들었습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였습니다.
(4) 안식을 파괴하였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은 두 돌판으로 되어 있는 데 한 돌판은 4 계명 즉 하나님을 위한 계명입니다. 이 4 계명이 마귀 때문에 생겼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선악과란 무엇인가요?

1. 선악과는 하나님의 형상 지우개입니다.
2. 선악과는 사람 영혼의 마취제입니다.
수술환자에게 마취약을 넣으면 아무 것도 모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선악과는 사람의 영혼을 마취시켜 버렸습니다. 그래서 몽롱한 정신으로 살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 하고 마귀와 교제하니까 마귀의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마취를 시키고 자기 마음대로 자르고 꼬매고 하는 것처럼 마귀는 우선 하나님의 사람을 선악과로 마취시키고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주무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룟 유다도 마귀로부터 선악과를 따먹고 마취되어 예수님을 팔아 버렸습니다(요13;2)
가인도 마귀에게 속아 아벨을 죽였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마귀에게 마취되어 하나님께 헌금드리는 것을 아깝게 보다가 결국은 파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인을 마취시키는 선악과는 무엇일가요?


1. TV가 마취제인 선악과입니다.
2. 술과 마약이 마취약인 선악과입니다.
3. 돈이 현대인들을 마취시는 선악과입니다.
4. 어떤 이에게는 명예가 마취제인 선악과일 수도 있습니다.
5. 쾌락과 오락,음악과 스포츠가 현대인의 선악과입니다.

3. 선악과는 자기 이탈 촉진제입니다.
사람은 사람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입니다.지렁이가 아무리 도를 닦는다고 용이 될 수가 없습니다. 밤나무가 아무리 노력하여도 백향목 나무가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었다고 하나님이 될 수가 없습니다.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갔습니다.그래서 사람이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이기를 바랐습니다.
선악과를 먹고 자기 위치를 이탈하려고 하였습니다. 자기 위치를 이탈하는 하는 것은 죄입니다. 사울은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위치를 이탈하여 번제를 드렸습니다. 제사장의 위치까지 갔습니다.

4, 선악과는 축복 제거제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음으로 엄청난 축복의 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저주를 받았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온통 축복속에서 살다가 모두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5) 하나님은 죄인에게 메시야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짓고 숨어 있는 아담과 하와를 찾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예수님에 대한 첫 예언입니다.

예수님은 예언에 따라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동안에 죄를 가리우게 하시려고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창3;8-21.

 

따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은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두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나무뒤에 숨었습니다.

죄지은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1. 죄를 알면 부끄러움을 압니다.

죄를 모르면 부끄러움을 모르고 죄를 알면 부끄러움을 압니다. 어린아이는 발가벗고 다녀도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옷을 벗고 벌거벗고 다니면서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이는 틀림없이 정신병자입니다.

죄를 아는 이들은 부끄러움을 모르개 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모를 때에는 벌거벗고 살아도 부끄러움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죄를 알고 나니 너무나 부끄러워서 무화과 나무로 치마를 하여 입었습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3;7)


2.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습니다.

사람의 눈은 얼마든지 피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끼며 숨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도 그랬습니다.


<그 아내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지라>(창3;8)


요나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시스로 가다가 배밑으로 숨었습니다. 죄지은 이의 특징은 숨는 것입니다. 간첩의 특징은 위장입니다. 도피하며 쫓기는 죄인은 숨는 것입니다.


3. 핑계를 댑니다.

죄지은 이들은 대부분이 핑계를 댑니다. 솔직히 인정하는 이는 드뭅니다. 아담은 하와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습니다. 하와는 뱀때문이라고 핑계를 댔습니다. 뱀은 핑계할 여유를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습니다.

나무 뒤에 숨어 있다고 하나님이 못 찾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불교는 찾아가는 종교이고 기독교는 하나님이 찾아 오시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고기잡이 하고 있는 베드로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메섹도상으로 바울을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양을 치며 우울증을 달래고 있는 미디안 광야의 모세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로뎀나무밑에서 죽여 달라고 실망속에 기도하고 있는 엘리야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38년된 병자가 누워 있는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숨어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 찾아 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물으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말씀속에 들어 있는 의미는 무엇일가요?


1. 하나님이 오시는 것을 예고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어디에 있는 지 모르셔서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너무나 불안에 몹시 떨고 있었기 때문에 예고하고 다가 가시겠다고 하시는 표시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어디 있는 지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이 다가 가실 때에는 이렇게 예고하시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전에는 모든 것들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 데 이제는 그런 능력이 뱀에게로 가버렸습니다. 무엇을 보아도 두려움이 생길만한 처지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고를 하고 오시느라고 짐짓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갈 때에는 헛 기침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기침이 나와서가 아니라 가고 있다는 예고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고 죄인이 되어 숨었는 데 만일 하나님께서 갑자기 앞에 나타나신다면 기절할 지도 모릅니다. 이에 대한 대비를 하나님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이든지 예고하시고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고 비밀한 일을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 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니라>(암3;7)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키실 것을 노아에게 알려 주셨습니다.하나님

께서는 소돔과 고모라 땅을 유황불로 멸하실 것을 아브라함에게 천사를 통하여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주실 것을 수많은 예언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도 신약에서 240번이나 언급하여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오실 때 예고하시며 오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오늘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알려 주시고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느 분이 죽음의 천사를 맞이 하였습니다.

그는 빌었습니다.

<제발 갑자기 오시지 말고 알려 주시고 오십시오. 그래야 내가 죽음을 대비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죽음의 천사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습니다. 죽음의 천사가 나타나서 <너를 오늘 데리러 왔다>라고 말했습니다.

<약속이 틀리지 않습니까? 나에게 올 때에는 미리 알려 주시고 오신다고 약속하였지 않습니까?>

이렇게 묻자 죽음의 천사가 말했습니다.

<나는 수 차례 예고하였지 않느냐?>

<언제 하셨습니까? 난 단 한번도 예고를 받지 못 하였습니다.>

<네 머리에 흰 머리칼이 보이기 시작하였지? 눈이 흐려지기 시작하였지? 귀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지? 왠 지 모르게 기력이 쇄하여 짐을 느껴지? 이 모두가 예고였다. 그 이상 어떻게 자세히 예고하겠느냐?>

이 말을 듣고 그 사람은 아무 말도 못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고하시는 분이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영성을 가지는 자에게 예고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예고하시며 오셨습니다.


나는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형제님이 외국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꿈에 자기가 13계단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다 올라가니 한 예쁜 여자가 맞이하는 데 왜지 모르게 지옥으로 데리고 가는 것만 같은 불쾌한 꿈이었습니다.

아침을 먹으면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조심하라는 충고를 받았습니다.

비행장으로 향하였습니다. 비행기 트렙을 오르는 데 우연히 세어보니 13 계단이었습니다.비행기안에서 인사하는 스튜디어스가 바로 꿈에 본 여자였다는 것입니다. 기겁을 하여 가방을 던져 버리고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그 비행기는 조금 후 폭팔하여 많은 인명 피해가 났다는 간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알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간구하십시다. 미리 대비시켜 달라고 말씀드리십니다. 가장 극심한 어려움인 3년반의 대환란을 하나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알기에 대비하여야 합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오늘도 우리에게 들려 오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2. 회개를 바라시는 음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어디에 있는 지 모르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말씀속에는 다른 의미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회개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를 요구하실 때에는 뒤에 용서를 숨겨 놓고 계시다는 암시였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회개하지 못 하였습니다.도리어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하나님께 항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왜 따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 항의하며 말했습니다.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하나님게서 나만 이 세상에 만드셨다면 나혼자서는 결코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만들어 주신 여자가 나를 유혹하였습니다. 하와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아담아! 나는 너를 도와주도록 여자를 만들어 주었다. 너는 감사하여야 하는 데 오히려 불평하고 있구나! 여자가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하였을 때 너는 단호히 거절하여야 했다. 너는 여자의 머리다. 여자가 네 머리가 아니다. 핑계대지 말아라. 네가 여자를 지배하여 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같이 핑계대지 말고 회개하기를 바라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각각 책임을 다른 곳에 돌리고 자기는 죄가 없다는 듯이 이야기하였습니다.


미드라쉬는 이런 이야기를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제 안식일이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황혼이었습니다. 모든 창조의 사역들이 다 마쳐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 10가지가 있었습니다.


1. 무지개  그러나 노아의 시대까지 무지개는 보여지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2. 만나

3. 샘

4. 두 돌판위에 새기질 글자

5. 두 돌판을 쓸 펜

6. 두 돌판

7. 발람 선지자에게 말할 나귀

8. 모세의 무덤

9. 아론의 지팡이

10. 아론의 지팡이에 날

이렇게 서둘러서 10가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너무나 바쁘신 하루였습니다. 눈코 뜰 사이없이 지내시고 아담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나무뒤에 숨어 있는 아담을 보고 회개하고 하나님앞에 나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말씀은 회개를 기다리시는 자비로운 음성이었습니다.


3. 심판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면서 하나님은 닥아 오셔서 뱀과 하와와 아담을 심판하셨습니다.

죄는 용서받아도 벌은 용서받지 못 합니다. 죄에는 반드시 보응이 따릅니다. 죄의 무서움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뱀을 향하여 심판하셨습니다.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 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굼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4-15)


하나님은 하와에게 이렇게 심판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 하리니 네가 수고하여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3;15)


아담을 향하여 심판하셨습니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 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 즉 네가 얼굴에 땅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얻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7-19)


땅도 심판하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땅도 저주를 받습니다.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모든 대상들을 일일히 심판하셨습니다.

우리도 모두 이 다음에 하나님께서 한 명 한 명 부르셔서 심판대위에 세우실 것입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죽음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4. 소망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말씀속에는 죄를 짓고 숨어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소망을 주시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사람은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생명과를 먹어야 할 사람이 선악과를 먹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마귀의 식구가 되었으니 마귀와 함게 멸망의 지옥으로 갈 운명에 처하에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메시야를 보내 주셔서 원수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자를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성경 최초의 예수 약속은 창세기 3장 16절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굼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그 후 하나님께서는 두 번 인류를 멸망시키시려고 하셨습니다.

(1) 노아 시대입니다.

세상이 모두 죄악속에 있는 것을 보신 하나님은 세상을 홍수로 쓸어 버리셨습니다. 그러나 노아만은 살려 두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아예 모조리 쓸어버리고 세상에 사람을 다시 창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을 그렇게 처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노아만 살려 두신 이유는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을 이루시려는 의도였습니다.

아담의 후손에서 메시야가 나와야 합니다. 이는 아담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2) 모세시대입니다.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나 하나님의 속을 썩였습니다. 모세가 40일을 금식기도하고 나서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하고 있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절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나되게 하라.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32;10)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조리 쓸어 버리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종보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아담에게 약속하신 창세기3장 16절 말씀이 맴돌고 계셨을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에서 메시야가 나오리라고 예언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아담부터 메시야의 소망을 가지고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재림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때에는 모든 질서가 바로 잡히고 새로운 세상이 전개될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말씀속에는 이같이 4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오신다는 예고입니다.

2. 회개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3. 심판하시는 말씀입니다.

4. 소망을 주시려는 말씀입니다.

 

 

첫 사람 아담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이 여타의 모든 동물과 차별되는 특징 하나를 들라 하면 그것은 생각하는 능력이고, 이와 같은 지성적 인간이 반드시 한 번쯤 스스로 묻는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 즉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 같은 보편적 인간의 정체성 질문에 대해 분명하고도 감명 깊은 답을 제시해 주고 있는데, 다름 아닌 ‘첫 사람 아담(Adam)’이다.

첫 사람 아담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우선적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다분히 진화론으로 의식화돼 있는 현대인의 고정관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수억년 전 우연히 작은 아메바로 출발해 원숭이 단계를 거쳐 오늘의 고등동물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식의 자기비하적 이론을 깨뜨리고, 오히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형상’(첼렘 엘로힘·창 1:27)으로서 지구상의 어떤 피조물보다 고귀한 영광과 아름다움과 능력, 그리고 세상과 역사를 좋게 가꾸고 발전시킬 책임과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임을 깨우쳐 준다.

그런 관점에서 아담의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창조론(창 1:1)에 기초하며, 역사의 주관자시며 전능하신 창조주 야훼의 존재를 기정사실로 전제하여 그분을 믿고 순종함으로써 한계 속의 인간, 즉 본래 흙(아다마·Adamah)에서 태어나(창 2:7) 흙으로 돌아갈 허무한 존재로서의 그 인간이 그토록 사모하고 추구하는 신적(神的) 지혜, 곧 영원한 생명과 영광, 행복과 기쁨의 세계를 바라보게 해 준다.

뱀으로 상징되는 사탄(또는 마귀)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지혜를 갈구하는 인간과 하나님을 이간시키기 위해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처럼 지혜로워진다고 유혹하여(창 3:5) 결국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낙원 밖으로 추방된다.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종말에 나타날 아담의 후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시어 그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통해 사탄의 권세를 멸함으로써(창 3:15) 이를 믿는 사람이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고 본래적 영생 천국을 회복하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요 3:16).

이 같은 관점에서 첫 사람 아담의 이야기는 슬픈 영화의 주인공 같은 인간(아담)의 비극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밝혀 주지만, 동시에 이 비극적 인간이 어떻게 낙원을 회복할 수 있는지를 제시함으로써 ‘해피 엔드’의 밝은 종말론으로 끝난다.

어떤 유전학자의 말처럼 첫 사람 아담의 이야기는 그 안에 수천억의 미래 생명을 DNA로 담고 있는 장대한 ‘서사 드라마’라 할 수 있으며, 이 같은 관점에서 6일간의 천지창조 과정 중 마지막 절정인 7일째 안식일에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며 찬양 드리는 인간의 영광된 모습은 역사의 끝에 재림하실 메시아 예수를 우렁찬 찬송 가운데 영접·예배하게 될 영광스런 디데이(D-Day)를 예고한다.

첫 사람 아담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끝까지 절망하지 않고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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