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시험은 딱 한 해만 치러지고 폐지된 뒤 다시 대학별 시험으로 돌아갔다. 대학 입시 이중 부담 논란에다 자격시험을 통해 대학 진학의 기회를 빼앗는 것은 교육의 기회 균등원칙에 위배된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더욱이 시행 첫해의 관리 부실로 인해 대학 정원의 140%인 1만7000명보다 훨씬 많은 2만5000명을 뽑은 데다 이마저도 일부 사회 저명 인사의 자녀들이 줄줄이 떨어지면서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결국 그해 대학 입학은 대학별 본고사로 대부분 결정돼 시험은 치러졌지만 실효성은 전혀 없이 사라진 셈이다.
- ▲ 1969년 11월 18일 70학년도 대입 예비고사 3, 4지구.
처음엔 대학 본고사 응시자격을 주는 수준으로 시행됐지만 73년부터는 예비고사 성적을 대학별 전형에 30% 반영하게 했다. 그러나 대학별 본고사가 당락을 좌우하면서 '망국병(亡國病)'이라고 지적될 정도로 과외 열풍을 부추겼고, 고액 과외의 경우 빈부 격차에 따른 위화감 조성이란 사회적 비난이 들끓게 했다.
1982년엔 학력고사제도로 다시 한번 변신한다. 학력고사 성적 50%와 고교 내신 30% 이상으로 대학에 진학하게 했는데, 이번엔 대학의 자율적인 선발기능 약화, 고교 내신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불거졌다. 이를 보완하려고 논술고사 강화 등의 방법을 쓰다가 1994년부터 지금의 수학능력시험 형태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