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1900년 파리 박람회
1900년 10월, 19세의 피카소는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를 타고 파리의 오르세 역에 도착했다. 그의 이 첫 번째 파리 여행은 그해 최대의 행사였던 파리 만국박람회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1851년 런던에서 시작된 만국박람회는 거의 격년마다 유럽과 미국의 도시에서 열린 커다란 볼거리였다. 특히 1900년 파리 박람회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인류가 이루어낸 과학의 발전과 인간의 진보, 그리고 미래에 대한 신념을 실제 눈으로 확인하고 만끽하게 한 행사로, 관람객 수가 약 5000만명에 달했다.
박람회는 주로 새로 발명한 기계나 산업 제품 전시가 주된 목적이었지만 미술관 전시는 박람회의 품격을 높여주는 아주 중요한 아이템이었다. 파리 박람회 기간에 그랑 팔레에서는 1889년부터 1900년까지의 10여년을 총망라하는 '프랑스 미술의 10년전'과 지난 100년간의 미술의 성과를 종합하는 '프랑스 미술의 100년전'이 열렸다. 평론가 로제 마르크스가 기획한 '100년전'에는 드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당시 아방가르드로 취급되던 드가, 모네, 세잔, 고갱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피카소가 처음으로 세잔, 드가의 작품을 본 것도 바로 파리 박람회에서였다. 미술가들 사이에서는 식민지 전시관과 트로카데로 궁에 전시된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 조각들이 새로운 관심사로 떠올랐고 이후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은 미술관 전시에 참여한 유일한 동양 국가였다. 그때까지 박람회에서 주로 섬세한 공예품으로 서구인들을 매혹시키고 '자포니즘' 붐을 일으켰던 일본은 1900년 파리박람회에서는 뜻밖에도 전통회화와 자국의 근대 서양화를 대거 전시했다. 이것은 장식적인 공예품만으로 일본문화를 이해하던 서구인들을 놀라게 했다. 일본은 이제 서양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서구와 대등하게 근대화된 국가라는 자신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적인 전시에서 미술이 순수한 미적 감상의 차원을 떠나 한 나라를 대변하는 이미지로서 정치 외교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일본은 이미 파악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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