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韓國歷史/(대한민국第一號)

[대한민국 제1호] 1966년 태국 해외건설 시장 첫 진출

好學 2010. 9. 12. 21:09

 

[대한민국 제1호] 1966년 태국 해외건설 시장 첫 진출

 

 

 

1966년 1월 태국의 남쪽 끝에 자리 잡은 도시 빠따니의 도로건설 현장. 이곳에 작업복 차림에 제법 덩치가 큰 사내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공사 지시를 하고 있었다. 옆에는 경리장부를 든 20대 사내가 동행했다. 두 사람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훗날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이 된 이명박 현대건설 사원(왼쪽이 당시 현장 직원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우리나라 건설업체가 외국에서 최초로 공사를 수주한 것은 태국의 빠따니와 나리타왓을 연결하는 총연장 98㎞의 고속도로 건설 공사였다. 태국정부가 IBRD차관을 받아 1965년 발주한 공사다. 1966년 1월 공사를 시작해 1968년 3월 준공됐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네덜란드 등 16개국 29개 업체가 입찰에 참여해 현대건설이 공사를 따냈다.

빠따니의 도로건설 현장.
당시 현대건설은 구닥다리 국내 건설 장비를 태국으로 갖고 가 공사를 했다. 신식 장비가 있었지만, 기술자들이 사용법을 몰라 무용지물이었다. 국제 규격 공사가 뭔지도 현장에서 배웠다. 당시 현대건설에는 아스콘(도로포장재) 제조 기술자가 없어 서울시가 중곡동에서 운영하던 아스콘 공장의 유일한 기술자를 현지로 데려갔다. 하지만 태국의 후텁지근한 날씨를 고려하지 못하고 아스콘을 배합해 공사를 끝낸 아스팔트가 녹아내리기 일쑤였다.

공사 수주 금액은 522만달러(60억원). 당시로선 큰 금액이었지만 첫 해외공사의 결과는 암담했다. 고생 끝에 공사를 끝냈지만 공사 금액의 절반이 넘는 300만달러(34억원)에 달하는 손해가 났다.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이 된 이명박 현대건설 사원, 왼쪽이 당시 현장 직원이었던 이명박 대통령.
그러나 정 회장은 태국 고속도로 공사에 대해 "비록 금전적으로는 거액의 손해로 끝났지만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공사를 끝내 천금을 주고서도 사지 못할 신뢰를 격전의 훈장처럼 받았다"고 회고했다. 정 회장은 한 달에 열흘은 태국에서 살았다.

이후 대한민국 해외건설의 역사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1960년대에는 전쟁터였던 베트남 밀림에서 공사를 수주했고, 1970년대 중동 붐 이후에는 태양이 이글거리는 사막 한가운데 수로를 깔았다. 이곳에서 벌어온 돈으로 한국은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다.

올해 우리 건설업체들의 해외 건설 수주액(11월 현재 452억달러)은 사상 최고치였던 지난해 기록(476억달러)을 넘어설 전망이다. 30~40년 전에는 고속도로를 깔고, 수로를 매설하는 토목공사 위주였지만 지금은 부가가치가 높은 플랜트 공사와 초고층 빌딩이 주력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해외건설 현장에서 피·땀을 쏟았던 건설인들에게 조금씩 빚을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