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韓國歷史/(대한민국第一號)

[대한민국 제1호] 1988년 전화 1000만… '1가구1전화' 시대로

好學 2010. 8. 21. 18:06

 

[대한민국 제1호] 1988년 전화 1000만… '1가구1전화' 시대로

 

 

 

국내에서 유선전화가 대중화된 것은 1986년 정부가 국내 기술로 개발한 교환기를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 전화국에 보급하면서부터였다. 이로 인해 1988년 가입자가 1000만명을 넘어서면서 국내에서도 '1가구 1전화'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까지 유선전화는 투기의 대상까지 될 만큼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상품이었다. 국내에 전화 개통을 위한 교환기가 워낙 부족해 전화 개통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미국·스웨덴 등에서 교환기를 잇따라 들여왔지만, 소득 증가에 따라 급증하는 수요에는 미치기 어려웠다.

전화 신청을 해 놓고도 개통까지 몇 년씩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였고, 대기자들 사이에선 서로 먼저 개통해 달라며 '로비'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1980년 무렵 서울 시내에서 명의 이전이 가능한 유선전화(일명 백색전화)에는 200만원이 넘는 웃돈이 붙기도 했다.

1988년 유선전화 가입자가 1000만명을 넘어서면서 국내에서도 '1가구 1전화'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상황이 반전된 건 정부가 1986년 국내 최초의 전화 교환기 개발에 성공하면서였다. 정부는 1981년부터 당시로선 파격적인 240억원의 연구비를 책정, 국산 교환기 개발에 나섰다. 웬만한 공장 건립에 50억원이 들지 않던 시절이었다. 정치권 등의 반대도 많았지만 개발자들의 5년이 넘는 헌신적 노력 끝에 만성적인 가입자 적체 현상은 해소되기 시작했다. 전화가 국내에 들어온 지 90년 만에 실질적인 '전화 대중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국내에 처음으로 전화가 개통된 건 이보다 앞선 1896년이었다. 당시 궁내부에 고종 황제 전용 전화가 설치됐다. 제한적이나마 일반인도 전화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건 1902년 서울·인천 간에 전화가 설치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일제 통치 기간에 전화는 대부분 일본의 대륙 침략 전시(戰時) 행정용과 일부 특권층의 사치품으로 사용됐다. 6·25 전쟁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우리나라는 1960년대 경제 개발 계획에 착수하면서 통신 인프라 재건 작업을 본격화했다. 1971년에는 서울과 부산 간 장거리자동전화가, 1983년에는 미국·일본 등 24개국과의 국제자동전화가 개통됐다. 1981년에는 현 KT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출범했다.

한때 '부(富)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유선전화는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이동통신 가입자가 4500만명에 이르면서 유선전화 사용 빈도가 빠르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유선전화 가입자는 2007년 2300만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대신 그 자리를 요금이 싼 인터넷전화가 대체해가고 있다. 인터넷전화 가입자는 현재 LG데이콤(205만명)을 포함해 600만명에 이른다.